본 설계는 과거 소수의 지배계층만이 누렸던 별서와 누각의 문화를 오늘날 모든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공공의 정원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쉼과 사색, 그리고 새로운 만남을 원하는 순천 시민과 도시를 찾는 방문객 모두가 이 공간의 주인이 됩니다. 우리는 사라진 연자루에 모였던 선비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현대의 시민들이 이 터 위에서 새로운 시대의 풍류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도록 공간을 계획했습니다.
2025년 현재, 남문터는 흉물이라는 오명과 함께 시민들에게 외면받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불편한 접근성과 무의미한 구조물은 도심의 중앙에 위치해 흐름을 단절시켰습니다. 우리는 도심의 재생을 위해 과거를 현재의 기술과 감각으로 재해석한 남문터를 제안합니다. 낮과 밤, 그리고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공간이 다채롭게 변화하도록 설계하여, 방문객이 머무는 모든 순간이 특별한 경험이 되도록 했습니다. 이는 과거의 기억 위에서 현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미래의 새로운 나눔을 싹틔우기 위한 시간의 복원 프로젝트입니다.대상지는 전라남도 순천시 원도심의 심장부인 순천부읍성 남문터 광장과 그에 인접한 옥천(玉川)변입니다. 이곳은 과거 순천부읍성의 남문이자 가장 활기찬 교류의 장이었던 연자루(燕子樓)가 위치했던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거대한 도로로 인해 파편화되고, 옥천과도 3m의 표고차로 단절된 채 그 역사적 의미를 잃어버린 공간입니다.
사라진 남문과 연자루를 물리적으로 복원하는 대신, 그 터에 깃들어 있던 성곽, 연자루, 후원이라는 세 가지 핵심 공간의 기능과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개념의 역사문화공원, 나눌터를 만듭니다. 이는 건축물이 아닌 조경적 해법을 통해 장소의 기억을 되살리고, 시민들을 위한 열린 문화 플랫폼을 제공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전통조경의 지혜와 현대적 재해석, 그리고 디지털 기술을 융합하여 다음과 같이 구현합니다.
전통 기법의 재해석: 연자루의 팔작 지붕과 기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레임과 일광을 이용한 기와 모습을 구현하였습니다. 또한 풍수지리와 유교사상에 의거한 식재와 배치로 전통 기법(취병, 화계, 차경)을 현대적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였습니다. 적지적수에 의거 방위에 맞는 수종을 식재하고(남쪽-매화나무, 대추나무, 버드나무, 대나무), 세한삼우로 선비들의 정신을 나타냈습니다. 사계절을 대표하는 우리나라 수종(복수초, 맥문동, 해국, 갈대 등)을 식재하여, 한 공간 내에서 절기의 흐름을 나타냈습니다.
전통 재료의 상징적 사용: 주된 동선인 성곽 길에는 성곽의 흔적을 나타내는 박석을, 진입부에는 격식을 갖춘 전돌을, 나머지 부동선에는 한국의 전통 포장 재료 마사토를 사용하여 각 공간의 위계와 성격을 발걸음으로 느끼게 합니다.
디지털 기술의 융합: AR(증강현실)로 복원된 연자루는 이제는 볼 수 없는 화려했던 모습을 실감나게 체험하게 하여 과거와 현재를 이어줍니다.
본 설계의 근본적인 목적은 남문터가 가진 '단절'의 문제를 치유하고, 새로운 '나눔'의 문화를 회복하는 것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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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나눔: 잊혀진 남문터와 연자루의 역사를 오늘날의 시민들이 다시 만나고 체험하게 합니다. 사람의 나눔: 나눌터에 모인 시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커뮤니티의 중심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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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나눔: 삭막한 도심 속에서 옥천의 물, 나무와 꽃 등 자연과 다시 만나는 생태적 공간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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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기존의 남문터 광장을 철거하는 대신, 그 구조물을 감싸 안아 새로운 문화적기능을 부여함으로써 '실패의 치유와 전환'이라는 긍정적인 도시재생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